슈만과 클라라슈만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비크 슈만의 사랑은 고전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로맨스 중 하나다. 슈만과 클라라는, 슈만이 저명한 음악 교사였던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제자가 되었을 때 만났다. 당시 겨우 8살이었던 클라라는 이미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음악 레슨을 받고 있었다.
슈만과 클라라의 관계는 슈만이 아버지의 제자로 함께 공부를 계속하고, 클라라의 음악 경력이 꽃피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발전했다. 두 사람은 친한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음악적 능력에 깊은 감탄을 나누었다. 그들은 서로가 작곡한 음악작품과 편지를 함께 교환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이 계속 증가했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 관계는 클라라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비크의 강한 결혼 반대를 비롯한 많은 장애물에 부딪혔다. 비크는 자신의 제자인 슈만이 자신의 딸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믿었고, 그들의 결혼에 동의하는 것을 강력히 거부했다.
결국, 제자인 슈만과 스승이자 연인의 아버지인 비크는 결혼문제로 법정 싸움을 하게 됐다. 6년간의 법적 분쟁 끝에 마침내 1840년 길고 힘든 구애 끝에 로버트와 클라라는 법원의 도움으로 결혼할 수 있었다.
스승의 아내를 사랑한 남자 브람스
요하네스 브람스와 클라라 슈만 역시, 19세기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사람이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1850년대 초 브람스가 젊고 촉망받을 시절 시작됐다. 브람스는 슈만에게 음악을 배우면서 클라라슈만과도 자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브람스는 클라라의 음악에 깊은 영감을 받았고, 그녀는 그의 초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후원자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슈만은 갈수록 정신 건강이 많이 악화되어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스트레스의 원천이 되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브람스와 클라라는 친밀한 우정을 유지했고 그들의 음악을 통해 서로를 계속 지지했다. 1856년 로베르트 슈만이 사망한 후,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브람스는 클라라의 집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고, 클라라가 슬픔과 상실의 시기를 겪는 동안 그녀의 옆에서 묵묵히 음악 작업을 돕고 감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들은 편지와 선물을 교환했고, 그들의 삶과 음악에 대한 그들의 속마음과 감정을 공유했다.
브람스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클라라에게 헌정했고, 그들은 종종 콘서트와 리사이틀에서 함께 공연했다. 클라라 역시, 브람스의 음악에 대한 확고한 지지자였고 브람스가 죽은 후에도 그의 작품을 계속 공연하고 홍보했다. 브람스와 클라라의 관계는 음악에 대한 공통의 열정과 서로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에 뿌리를 둔 깊은 사랑과 우정의 관계였다.
리스트와 클라라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프란츠 리스트 역시, 클라라 슈만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리스트는 낭만주의 시대의 가장 위대한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B단조 소나타를 그녀에게 헌정하려고 했다. B단조 소나타는 리스트의 유일한 피아노 소나타로, 단악장이지만 연주시간이 30분이나 되는 대작으로 최고의 테크닉과 표현력이 요구되는 곡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리스트가 클라라에게 작품을 선물했을 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작품을 자세히 살펴보니, 헌정이라는 문구에 줄이 그어져 있었고, 글자는 클라라의 남편이자 리스트의 소중한 친구인 '로버트 슈만에게' 라는 문구로 대체되어 있었다.
(혹자는 슈만이 자신의 환상곡 op.17번을 리스트에게 헌정했기 때문에, 리스트 역시 감사의 답례로 B단조 소나타를 슈만에게 헌정했다고 한다. 클라라슈만, 브람스와 같은 보수성향의 낭만파 음악가들은 이 곡의 파격적이고 난해한 진행방식 등으로 인해 이 곡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
클라라에 대한 리스트의 애정은 그들의 친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었다. 리스트는 클라라의 뛰어난 재능에 대해 자주 말했다. 편지에서도 클라라의 연주는 기술의 한계를 초월하고 순수하며,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밝혔다.
이상, 슈만, 브람스, 리스트 3명의 유명한 음악가에게 사랑받은 클라라슈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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